파과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계의 본색을 이미 충분히 확인하고 떠나온 길인데도, 아직도 그 이면은 한 점 온기를 품었을지 모른다는 기대.
정확하게는 그 의뢰인이 한때 갖고 있었던 가족, 그것을 불의의 방식으로 잃었을 때 한 사람의 정신이 얼마만 한 손상을 입는지, 과육에서 떨어져 나온 사과껍질 같은 생의 잔여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것이다.
"너도 나도, 지켜야 할 건 이제 만들지 말자."
그것들은 냉장고 안에 핀 성에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단지 동전이 바닥났을 뿐인데 조각은 지금껏 형태를 유지해 온 자신의 남루한 삶 전체를 비워나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가 다소 컸던건지 약간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제목의 모티브가 되는 파과나, 조각과 류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지켜야 할 것을 만들지 말자는 류의 마음과, 상실을 살아가는 조각의 태도. 다만 강박사에 대한 조각의 시선이나 투우의 감정선에 공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비뚤어진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야기와는 별개로, 살다보면 약자의 마음이란 걸 마치 단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고 상처를 주는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어린 시절이나 앞으로 늙을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거나 죽음을 앞에 둘 때도 그러한 자세를 유지할지 궁금하다(물론 나는 그 사람의 지극히 일부만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오해일 확률도 크다. 나에게도 일부 그러한 모습이 있으므로). 나는 스스로를 너무 빨리 늙어버린, 정확히는 성숙해지기 전에 이미 늙어버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묘하게 연상되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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