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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지식 & 에세이

도파민네이션 - 쾌락과 고통 사이의 균형 (2)

by 파페즈 2023. 11. 11.

dopamine nation, 도파민 구조식 이미지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인내하는 기술

저자는 임상 사례들을 통해 기본적 약물 치료 외에도 물리적 장벽 설정, 주의 전환, 상징화 등 다양한 중독 극복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로맨스 소설에 읽기에 중독되어 수면 박탈 지경에 이르렀던 저자 본인은 태블릿을 버리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야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물리적 거리와 의도적인 불편을 유도했다. 접근성은 중독을 통제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마시멜로 실험에서 마시멜로를 바로 먹지 않고 인내한 아이들 중에는 주의를 돌려 다른 활동에 집중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마시멜로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등의 특이한 행동도 관찰됐다. 이는 마시멜로를 다른 요소로 읽으려는 상징화 전략으로, 그것을 자신이 먹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중한 반려동물과 같이 취급함으로써 자신을 통제했다. 알콜 중독 내담자 중 한 명은 모든 술을 버린 뒤 마지막 한 병 만을 남겨 일종의 토템처럼 냉장고에 모셔두었다. 가득 찬 맥주 박스는 음주 유혹의 대상이지만, 한 병 남은 맥주병은 본인이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린 결단과 통제의 상징이 된 것이다.

 

 

 

수치심 극복

아,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세요, 제이콥.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다들 그런 것처럼 문제가 있을 뿐이에요.

 

수치심이 우리 자신을 나쁘게 느끼게 하는 감정이라면, 죄책감은 긍정적인 자아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인정하는 감정이다. (...) 내가 보기에 수치심이냐 죄책감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위반 행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가 우리에게 거부, 비난, 회피의 감정을 드러내면 우리는 파괴적 수치심(destructive shame)의 사이클로 들어가게 된다. 파괴적 수치심은 수치심의 감정적 경험을 심화시키고, 처음에 수치심을 느끼게 했던 행동을 완전히 고정시켜 버린다.
반면에 상대가 우리를 더 가까이 두고 구원/회복을 위한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는 친사회적 수치심(prosocial shame)의 사이클로 들어간다. 친사회적 수치심은 수치심의 감정적 경험을 누그러뜨리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멈추거나 줄이도록 도와준다.

 

내가 완전히 솔직해지면서 계속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 있고, 거기에 갈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 됐어. 그게 나 자신을 용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내게 필요한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냈지. 인생에서 전진할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었어. (...) 더 나아가 친사회적 수치심은 누구나 결점을 가졌고, 실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용서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근거를 둔다. 옆길로 엇나간 사람을 내치지 않으면서 집단 규범을 고수하도록 하는 열쇠는, 벌충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명시한 수치심 이후의 '할 일' 목록을 만드는 데 있다.

 

아이들은 나를 용서했고, 지금까지도 내가 자기들의 초콜릿을 어떻게 "뺏어" 먹고 "거짓말했는지" 말하기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놀리면 난 괴로우면서도 그걸 반긴다. 우리 집에서는 누구나 실수를 해도 영원히 비난받거나 버림받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가족으로서 함께 확인했다.

 

 

자아와 수치심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은 중독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중독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존 상태에서 기인하는데,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과정에서 중독이 심화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점점 더 커진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문제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시도에 대해 수용하고 지지하는 타인의 반응이 필수적이다. AA(Alcoholic Anonymous) 12단계의 첫 단계는 "우리는 우리가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시인했다"라고 타인에게 털어 놓는 것이다.

 

더불어, 내 생각에는 중독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으며 필연적으로 고통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컨대 약물 중독으로 인해 피로와 주의력 결핍을 겪는 데이비드는, 이는 중독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정신 질환의 결과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독이 문제라고 인정하면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물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금단 증상을 견뎌낼 용기가 없기 때문에 문제를 일종의 불모지에 방치해 두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문제가 진단과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은 난치병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심화시키고 있다는 책임감과 수치심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환자를 괴롭힌 원인, 중독에 빠트린 원인이 과거의 트라우마라면, 그 사건과 자아 개념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 사건을 바꿀 수 없는 고정된 사실로서 인식한다면 남은 인생 동안 고통받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 현재 상황의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과거를 보는 창 역시 달라진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하게끔 한 시련이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해 준 다리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성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 Reference

새희망병원 12단계 (n-hop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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