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쾌락-고통 저울
그녀는 자신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인스타그램 하기, 유튜브 보기, 팟캐스트와 플레이리스트 듣기 등 일종의 기기에 의존한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업을 받으러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듣지 말고 생각이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해보라고 권했다. (...)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왜,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그런 비참함을 피하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 스트레스(특히 정신적인)를 경험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게 된다. 이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에너지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쾌락을 좇는 것이다. 폭식, 인터넷 서핑, 쇼츠 영상 시청 등.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일시적인 쾌락을 제공할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통을 더 심화한다는 것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감정과 관련된 인간의 신경계에는 쾌락-고통 저울이 존재하며, 저울은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고통뿐만 아니라 쾌락 역시 우리의 신경계에서 자극, 즉 스트레스 요인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쾌락을 느끼면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러면 저울은 이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대편인 고통 쪽으로 압력을 가하게 되는데, 이 때 고통에 대한 역치가 감소하고 쾌락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긴 불쾌감과 고통이 남게 된다. 폭음, 강박적인 포르노 또는 쇼츠 영상 시청 후 찾아오는 불쾌감이 여기에 해당한다. 저울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점점 더 쾌락 행동을 강박적으로 추구하고 의존하게 되는, 중독(addiction)의 단계로 들어선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 쾌락에 대한 역치가 증가하여 같은 자극으로는 동일한 정도의 쾌락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더 큰 고통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많은 현대인들은 도파민 보상 경로가 과활성화된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쾌락에 쉽게 접근 가능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이로 인해 저울은 쾌락의 반대편인 고통 쪽으로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우리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이처럼 고통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 다른 자극인 쾌락을 좇는 것은 결과적으로 신경계를 혹사시키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울이 스스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루함을 충분히 느껴야 다시금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만난 환자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강박적으로 사용하던 마약을 일정 기간 끊음에 따라 처음에는 중독 행동에 대한 강박적 충동에 시달리지만, 2주에서 4주 정도가 지나면 훨씬 더 안정되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격한 운동 또는 찬물 샤워와 같이 일정 기간 적당한 고통을 겪는 습관을 형성한 환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 회피하고 부정적으로만 인식했던 고통을, 본인의 통제와 의도 하에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불쾌감과 우울감을 극복했고, 쾌락적 자극이 없는 일상적인 상태에서도 작은 기쁨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예전에 잠깐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던 찬물 샤워를 다시 해보고 있는데 만족도가 꽤 높다. 나의 의도 아래에 놓인 고통은 생각보다 불쾌감을 가져다주지는 않았고, 고통의 부재가 곧 잔잔한 쾌락으로 남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도파민과 동기
신경과학자들은 보상 자체(예를 들면 코카인 주사)가 주어지기 전에라도 조건 단서(예를 들면 버저, 메트로놈, 불빛)에 반응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쥐의 뇌에 탐침기를 넣는 방법으로 밝혀냈다. 보상을 받기 전에 조건 단서에 반응해 도파민이 급증하는 현상은 우리가 좋은 일이 생길 것임을 예감할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설명한다. 조건 단서가 나타난 직후, 뇌에서 발화한 도파민은 기준선까지가 아니라 그 이하로 감소한다. 이렇게 도파민이 순간적으로 살짝 부족한 상태가 되면, 우리에게는 보상을 찾아내라는 자극이 주어진다. 기준선 밑으로 떨어진 도파민 수준은 갈구를 일으킨다. 이러한 갈구는 중독 대상을 얻기 위한 의도적인 활동으로 이어진다.
"실험용 동물이 얼마나 중독되었는지를 보려면, 그 동물이 자신의 중독 대상을 얻으려고 얼마나 자진해서 열심히 움직이는지를 보면 돼요. 레버를 누르거나, 미로에서 길을 찾거나, 사다리를 오르거나 하는거죠." 나는 인간도 이와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파민 소비는 노동에 쓰지 않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노동 자체를 포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전 연구들은 도파민을 단순히 쾌락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보았으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쾌락 자체보다는 보상 체계(reward circuit)와 동기부여에 관여하는 요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선 도파민이 가장 크게 활성화되는 때는 쾌락 자체를 경험할 때가 아니라 쾌락을 얻게 될 것임을 예상할 때이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에서 살펴보았듯이 마약을 비롯한 강박 행동을 하는 이유는 쾌락을 좇기 위함이 아니다(그들은 고통을 겪는 '환자'이다).
도파민은 쾌락을 얻게 될 것임을 예상할 때, 그리고 장기적으로 동일한 수준의 보상을 얻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으며 확률적으로 큰 보상이 주어질 가능성(불확실성)이 있을 때 가장 활발하게 분비된다. 그리고 도파민의 부족 상태는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게끔 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도파민은 자체가 쾌락과 관련되어 있다기보다는 동기부여 시스템의 일환으로 쾌락이 제공된다고 해석된다.
보상 체계는 포만감, 성욕 등과 같이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행동들을 위해 발달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통해 생명체는 무작위로 행동하는 것 아니라, 특정 행동과 결과가 다른 것보다 가치 있으므로 어떤 행동을 우선적으로 취해야할지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식욕과 성욕 등은 한번 충족되면 일정 기간 불응기(refractory period)를 갖게 되는 반면, 마약을 비롯하여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과다한 쾌락은 불응기 없이 지속적인 쾌락을 제공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임계점을 넘게 되면 쾌락-고통 저울과 보상 체계가 손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도파민은 쾌락과는 무관하지만 보상 또는 동기부여와는 관련된다. 중독자는 더 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과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강박 행동을 추구하게 된다.
중독 상태가 되면 도파민의 특징에 따라 즉각적이고 강렬한 보상을 갈구하게 된다. 따라서 더이상 장기적이고 꾸준한 보상을 통해서는 동기부여를 받을 수 없다. 기존에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 행동들에 대한 동기가 사라진다. 싱거운 음식, 긴 연애와 결혼, 꾸준한 노동의 가치가 현대 사회의 인스턴트들에 의해 내몰리는 것이다.
* Reference
현대인의 삶이 불행한 이유 l 스탠포드 정신의학 교수 애나 렘키 - YouTube
Brain Reward System (simplypsychology.org)
Volkow ND, Koob GF, McLellan AT. Neurobiologic Advances from the Brain Disease Model of Addiction. N Engl J Med. 2016 Jan 28;374(4):363-71.
'메모 지식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과 - 늙어감에 대하여 (0) | 2023.11.12 |
---|---|
도파민네이션 - 쾌락과 고통 사이의 균형 (2) (3) | 2023.11.11 |
아가미 - 결함과 적응에 관하여 (2) | 2023.10.30 |
셀피(Selfie) (1) | 2023.10.02 |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종교 (0) | 2023.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