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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지식 & 에세이

인생의 의미

by 파페즈 2024. 12. 8.


삶은 왜 의미 있는가 ─ 속물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의 나침반

 

속물

속물이란 모든 것을 (그 내재적 가치가 아닌) 위계 질서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속물의 문제는 보편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건전하지 않은 전제로 대상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속물적인 가치관은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 재생산되기 쉬운 경향성을 가진다. 이는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관해 제대로 사유하기 어렵게 만든다.

속물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위계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일은 만족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되는 욕구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강박행동을 함으로써 느껴지는 일시적 만족감이 가치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반면 삶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성찰은 이러한 고통을 곧바로 경감시켜주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삶의 방향을 조정할 수는 있다.

 

 

무의미 논증과 숨겨진 전제

의미 또는 가치는 보편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의미와 같이 다소 추상적인 개념에 관해서 생각할 때는 숨겨진 토대없는 전제들을 발견해야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독단성, 자연주의, 생물학적 환원 등이 있다.

 

아래와 같이 인생이 무의미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그렇게 결론 짓는 경우를 무의미의 논증이라고 하자.

- 인생의 무의미한 것 같다. (A이다)
- 따라서 내가 먹고, 자고, 하는 모든 행동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B이다)

 

여기서 숨겨진 전제를 파악하여 논증을 타당하게끔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숨겨진 전제)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내가 먹고, 자고, 하는 구체적인 행동, 선택, 경험들은 무의미하다. (A라면 B이다.)
- 인생이 무의미한 것 같다. 적어도 인생이 유의미하다고 하다는 증거가 빈약해보인다. (약한 주장이지만 / A이다.)
- 따라서 내가 먹고, 자고, 하는 구체적인 행동, 선택, 경험들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B이다)

 

위의 논증에서 아래의 두가지 사항을 보완해보자.

 

1) 인생의 의미는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행위자의 실천과 참여, 선택이 내포되어 있는 개념이다. 반면, 관찰자는 밖에서 대상의 기능적 의미만을 포착한다.

2)  무의미의 논증에서 'A이다'는 다소 추상적이어서 참/거짓을 판단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대우명제로 재구성한다.

 

- 인생의 구체적 경험들이 삶에 참여하고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충분한 근거로서 작용한다면,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다. (~B라면 ~A이다)
-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근거로 작용하는 구체적 경험들이 존재한다. (~B이다.)
-  따라서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다. (따라서 ~A이다.)

 

유의미 논쟁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전제로부터 추상적 결론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무의미 논쟁보다 더 타당하다. 유의미 논쟁의 전제, 즉 '선택을 내리는 관점에서 근거로 작용하는 구체적 경험이 존재한다'가 참인 명제라고 답할 근거를 찾는다면,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적 의미와 배경적 의미

인생의 의미에는 내용적 의미와 배경적 의미가 있다. 내용적 의미는 고통을 감소시키고 쾌락을 증대시키는 것, 아름답고 좋은 것을 향유하는 것이다. 배경적 의미는 내용적 의미의 전제이자 제약으로서, 내용적 의미가 가능하게끔 하는 형식들에 관한 것이다. 배경적 의미가 준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쾌락을 증대시킨다 해도, 이는 보편타당하지 않다. 예컨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남을 착취하는 경우는 나의 쾌락을 증대시켜도 배경적 의미에서 정당화되지 않는다. 우리는 배경적 가치를 준수하면서, 내용적 가치를 자신의 기질, 능력, 여건에 비추어 기꺼운 방식으로 풍부하게 채우고 창출하고 경험해야 한다.

 

대표적인 함정을 벗어나는 방법

- 공허의 충동과 의무감: 자연주의의 오류와 비슷하다. 우리는 (생물학적이든 다른 이유이든) 많은 유혹이나 강박에 이끌리는 존재이지만, 그대로 행동하는 것 또는 충동을 해소하는 것이 옳거나 가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속물' 사회가 주는 압박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의례들이나 개인의 막연한 걱정들은 충분한 검토 없이 우리 안에서 내재화되어서 스스로를 옥죄지만, 사실 여기에는 아무런 토대가 없다.

 

평생 먹을 밥의 양을 생각하면서 그 밥을 언제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지금 한 끼를 적당한 공복에서 맛있게 먹으면 될 뿐이다. 이런 리듬 속에서 매 순간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걱정이 들 때는 탐구하고, 실행한다. 그리고 실행한 뒤는 반드시 그 걱정을 버린다.

 

 

욕구 충족과 쾌락의 차이점: 욕구 자체는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욕구의 충족은 쾌락 증대나 고통 감소 등을 불러오는 경우에만 내용적 의미가 있을 뿐, 행위의 근본적 이유가 될 수 없다. 경유하는 신념이나 욕구가 타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욕구의 만족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욕구 만족을 최대로 증대하는 것은 올바른 목표가 아니다. 잡초 잎사귀를 세는 일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매개적 만족에서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가치의 의미에서는 누구의 고통도 감소하지 못하며, 감각적 쾌락도 증진하지 못하고, 진리와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과 유대를 형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삶은 배경적 의미에서 결격은 아니지만, 가치와 절연되어 있다.

 

그 외에도 아래와 같은 방법들을 반영하여 인생의 가치와 이성적 실재론자의 태도를 정리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 목적과 수단의 이분법에 주의하기

- 실존의 부담 직시하기
- 경험의 순간에 집중하기 (↔권태) 

 

나는 고통이나 쾌락 같은 의식적 경험을 하는 존재이고, 가치에 비추어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반성하여 행위할 수 있는 존재이고, 내용적 가치를 분업해서 실현하고 공유하는 사회 구성원이며, 아름다움이나 진리 같은 좋은 것에 기여하고 함께 음미하고 공유하는 존재이며, 서로의 삶을 진지하게 염려하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더 많은 사람들과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존재이며, 평등한 권리의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그리고 가치를 깨달음으로써 잠재력을 실현할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나는 존엄하다. 인간이 갖는 궁극적이고 기본적이 이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1. 우리가 원할 만한 사태와 바라지 않는 사태는 동시에 존재한다.
2. 원할 만한 사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그 사태가 가능하게 하는 가치를 오롯이 향유하는 것은 좋다.
3. 바라지 않는 사태가 현재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판받아야 하는 부당한 것들도 많이 존재하며, 이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 좋은 것을 더 발전시키고, 나쁜 것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는 데는 부담이 따른다. 이 여건과 부담은 모두 실존이 딛고 있는 한 피할 수 없다.
5. 불확실성 역시 실존의 한 측면이다.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현실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여러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그 일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 그 밖의 것을 걱정하는 것은 무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