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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지식 & 에세이

베이즈 추론과 폐쇄적 사고

by 파페즈 2025. 4. 21.

Yacht dice
Yacht dice


때로는 가설에 반하는 정보를 아무리 제시해도 사전신념을 결코 수정하지 않고 기존 주장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함께 잘 지내다가도, 정치나 종교 등 근본적인 가치관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면 폐쇄적인 사고관이 드러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이를 베이즈 통계학의 관점에서 분석해볼 수 있을까?

고집을 부리는 것은, 정보가 계속 추가되어 사후확률이 업데이트되어도, 사후오즈가 유의미하게 바뀌지 않는 경우로 볼 수 있다.

 

 

만약 친구가 90% 확률로 (6면) 주사위의 숫자를 맞추는 초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실제로 10회 중 9회를 맞추었다.
- H1: 친구의 말대로 90%로 맞추는 초능력자다.
- H2: 초능력이 없는데 찍어서 우연히 맞춘다.

BF = P(D|H1) / P(D|H2)
= { (9/10)^9 * (1/10)^1 } / { (1/6)^9 * (5/6)^1 } 

여기서 BF = 468517로,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가설 H1의 확률이 운으로 맞췄다는 가설 H2의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H2에 대한 사전 믿음이 H1보다 468517배 높지 않은 이상, 친구가 초능력을 가졌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는가? 음, 초능력이 있구나라고 바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즉, 사전 오즈 <1 [P(H1) < P(H2)] 인 상황에서, 정보를 통해 업데이트된 사후 오즈 > 1 [P(H1|D) > P(H2|D)]으로 수정되는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은 H1에 대한 또다른 가설인 H3를 제기하게 된다.

- H1: 친구의 말대로 90%로 맞추는 초능력자다.
- H3: 맞추는 초능력은 없는데, 90% 확률로 특정 한 면이 나오는 사기 주사위를 쓰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H1과 H3에 대한 BF를 구해보면, 이는 1이 되고,

10번 중 9번을 맞추는 시행이 계속 반복되고 관찰되어도, BF는 계속 1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관념 상 P(H1)<P(H3) 임을 가정하면, 아무리 주사위를 맞추는 행위를 반복해도  사후 오즈는 결코 1을 넘을 수가 없다.

즉, 일상에서 상대의 신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제시해도 설득되지 못하는 경우를, 베이즈 요인의 변화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주어지는 정보와 관계되는 가설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보를 제시해야만 신념을 바꿀 수 있다. 

 


예컨대 H3 가설에 대응하기 위해, 친구가 쓰던 주사위 대신 내가 일반 주사위를 구매해서 준다고 하자.
그 주사위로도 10회 중 9회를 맞춘다면?
또다른 가설인 H4, H5, (...), Hn이 얼마든지 등장한다. 내가 못 볼 때 다시 사기 주사위로 바꿔치기했다(H4), 특정 면만 나오는 던지기 기법이 있다(H5), (...), '아무튼 어떤 정보가 관찰되든 어떤 방식으로 사기를 쳤을 것이다'(Hn)
Hn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H1과 비교해보자.

 

- H1: 친구의 말대로 90%로 맞추는 초능력자다.
- Hn: 아무튼 어떤 방식으로든 사기를 쳤을 것이다.

 

BF = P(D|H1) / P(D|Hn)
= { (9/10)^9 * (1/10)^1 } / 1 = 1/26

당신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친구는 사기를 쳤다'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놓았기 때문에, 항상 P(Hn|D)=1 이다.
따라서 사전 믿음을 배제하면, 사기를 쳤다는 가설이 초능력이 있다는 추론보다 합리적이다.
그럼 여기서 더 많은 정보가 관찰된다면 당신의 신념을 바꿀 수 있을까? 친구가 시행을 추가로 반복해서 100회 중 90회를 맞췄다.

BF = P(D|H1) / P(D|Hn)
= { (9/10)^90 * (1/10)^10 } / 1 = 1/131272619177803

재미있게도 오히려 사기를 쳤다는 추론의 합리성이 더욱 강해진다. 이를 역화 효과(backfire effect)에 대한 베이즈적인 설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증가를 제시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 경우, '당신의 가설은 무엇인가?', '어떤 정보가 나온다면 당신의 믿음이 바뀔 것 같은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반복하면, 정보와 관련된 가설의 성격을 파악해야 사후 신념을 바꿀 수 있다. 그에 대한 답이 없다면 더 이상의 정보 제시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베이즈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정보가 제시될 때 자신의 신념을 수정할 가능성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기를 쳤다'는 가설의 성격은, 어떤 정보가 관찰될 때 신념이 업데이트되는 경우의 수 자체를 제한하는 형태이다. '내가 옳다'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대화에 임한다면 이것은 더 이상 베이즈적이지 않다.